본명선언 - 기획의도 :: 2004/06/07 14:40

1920년 이후 제주도와 오사카를 오가는 군대환(君代丸)이라는 배에 몸을 실은 조선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떠난 이들은 ‘재일동포 1세’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50년이 지난 현재, 재일동포는 3, 4세대에 이어져 약 66여만 명에 이르고 있다. 재일동포들은 두 가지 이름이 쓴다. 하나는 일본 이름인 통명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이름인 본명이다. 재일동포의 90% 이상이 통명을 쓰고 있으며, 극소수만이 본명을 사용하고 있다. “내 이름은 홍형숙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작명소에서 천원을 주고 지었다는 내 이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한 기억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이름은 영희와 철수다...그 이름이 서른 일곱해가 지나 이제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만들면서 나는 줄곧 내 중심에 놓을 ‘흔들리지 않을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떠오른 것이 3년 전에 만났던 재일동포 친구였다. ‘이름’이란 한 사람을 부르는 기호일 뿐이다. 그러나 두 시간 남짓한 거리의 일본으로 건너가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오사카의 소년들이 ‘이름 때문에 그토록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나는 아득해졌다. ‘재일동포’라는 이름은 3.1절이나 8.15에 들을 수 있는 ‘정해진 TV 프로그램’일 뿐이다. <본명선언>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또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팀은 중요한 선택을 했다. ‘역사, 민족, 차별 등 이미 알고있는 상황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름 때문에 눈물흘리는 소년들이 있다는 사실이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작업을 시작할 때의 제작팀처럼 <본명선언>이라는 말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사카 아이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심히 스쳐온 역사에 대해, 그리고 나와 그들의 모국에 대해... 물론 아이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이 순간 이후 그들을 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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