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시간 - 생존자들 인터뷰 중에서 :: 2004/06/08 21:23

30년도 더 지난 그 깊은 학살의 상처를 끄집어 내는 통과의례를 가해자였던 한국사람에 의해 또 다시 경험해야 했던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들.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 올해 아흔이 넘은 응웬티니 할머니는 이제 거동도 불편하고 학살 당시의 기억도 가무룩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고통의 기억과 지울 수 없 는 몸의 상처로 우리를 맞이한다.
응웬 반 또이 (74세) “67세 된 마을 노인을 잡아서 망고 나무에 묶고, 모기장으로 얼굴을 씌운 뒤 총을 쏴 죽였어. 그들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33명이나 죽였어.” 그는 1967년 음력 2월 9일 베트남 중부의 깊은 산골 빈쑤언에서 저질러진 학살로 부인과 태어난 지 4일된 갓난아이까지 네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잃었다.
브이 티 농 (46세) “만약에 전쟁이 생기면 어떤 나라도 참전하지 마세요. 나는 전쟁을 안 좋아해요. 현재 이라크 전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볼 때 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너무 슬퍼요”
레 딘 묵 (46세) “전투 중에 그 가운데 있는 인민들이 폭탄이나 총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것은 전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시다. 그렇지만 1968년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 한국군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선것은 교전 중이 아니었어요.” 레 딘 망 (35세) “저는 너무 어려서 학살 당시 일은 잘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러는데 엄마 품안에서 젖을 먹고 있을 때 엄마가 죽었대요”
당 티 카 (39세) “학살 당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와서 떠돌아 다녔어요. 다른 아이들은 부모와 가족이 있는데 나는 아무도 없어서 참 슬펐어요.”
팜 딘 선 (66세) “아내와 아들은 학살 현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아들은 배가 부풀어 올랐어요” 그는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 생생한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처음으로 한국 사람에게 털어 놓는다.
응웬 티 니 (91세) 두대의 헬기가 투이보촌 고소이 지역에 군인들을 내려놓고 떠난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땅굴을 찾아 숨고, 군인들은 그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지시한다. 한국군은 굴 속에서 기어나오는 사람들을 차례대로 쏘았다. 145명의 마을 사람들이 죽었다. 응웬티니 할머니는 품에 안고 있던 손자를 그 자리에서 잃고, 할머니는 턱 한 쪽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팜 티 호아 (75세) “1968년 음력 1월 26일 학살당한 135명의 동포들을 기리다” 하미마을의 위령비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만 얘기해요. 다시 과거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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