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 연출의 변(오정훈) :: 2004/06/07 15:19

아 !
오정훈
2000년 선거가 끝났지 오래다. 그리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것도 모두 마쳤다. 약 6개월 반 동안 내내, 나는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아직도 귓가에는 ‘바꿔 ! 바꿔 ! ’ 소리가 빙빙 돌고 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대해서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늘상 있는 선거이고, 선거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그리 많은 변화는 없다. (세상이 언제는 금새 변했는가 !) 더군다나 그동안 워낙 나의 가슴을 차갑게 만든 후보자들, 그리고 당선된 후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 도대체 국회의원은 왜 되려고 하는가 ? 온갖 비리와 당쟁으로 서로의 주장을 한치의 양보없이 야욕과 날치기, 무능한 정치운영의 반복만을 보여준 그들에게 또는 그러한 자리에 무슨 호감이 생길 수 있겠는가. 쓴 웃음 한번 지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밖에.... 그러나, 총선시민연대 사무실에 촬영을 가면서 나의 신파조가 작동했는지, 왠지 무언가 발언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이들을 선거에서 떨어뜨리자는 낙선운동은 전국적 힘으로, 국민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점점 내 안의 냉소가 조금씩 따뜻한 기운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권회복, 참여민주주의라는 커다란 불씨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촬영과정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이 운동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한 순간 한 순간 어렵고 힘든 지점들을 만나며 토론하고 기획하고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카메라를 들면 그 결과물의 활용과는 상관없이, 당시에는 주변인 혹은 관찰자로 인식되어지는 것만 같았다. 왠지 시민연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든 나를 이상한 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역사의 한 순간, 사회적 힘이 부딪히는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이 사뭇 나를 긴장시켰고, 단련시켰다. 흐르는 움직이는 역사 속에 카메라로 그 현장을 담는다는 것은 진정 흥분되는 일이다. 촬영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애초에 기획된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이 발전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빨리 진행되는 긴박한 상황 속에 계획은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낙선운동이 갖는 정치적 한계, 시민운동의 자기 지향성 혹은 목표점, 지역간 갈등, 운동을 이끌고가는 사람들간의 갈등, 이 모든 것은 한낱 머리 속 생각에 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할 뿐이었다. 구성방향에 맞게 촬영을 하고 있는지가 계속 의심이 되었다. 하루 하루 시간은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고 촬영 테이프는 늘어나지만 과연 이 속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이 작업을 함께 한 제작팀에서의 깊이 있고 다양한 토론이었다. 공동작업의 어려움을 익히 들었던 터라 서로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사실 있었으나, 우리는 잘 맞았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하기도 하고, 나의 썰렁한 농담에 웃어줄 주 아는 여유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는 모두 나처럼 웃기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여튼 낙선운동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면서 주제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움직이는 현실은 기록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주제와 더불어 상황에 대한 참여를 함께 요구하며 선거 개표일을 앞당기는 듯 했다. 이번 작업의 특징은 여러 대의 카메라, 촬영자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다. 부산, 대구, 원주, 광주, 대전, 서울( 이곳에서는 동시에 3대의 카메라가 움직이기도 했다.) 등 각 촬영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전에 같이 일 했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각 시민단체가 낙선운동에 동의하며 빠르고 급하게 조직된 것처럼 우리의 제작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간 활동해 온 독립영화의 성과이면서 지역 영상문화 혹은 운동의 성장 상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각 지역 촬영자들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작품이 나올 수 있을 지 의심이 간다. 메일을 간간히 주고 받으며 연출의도와 인터뷰 목록을 보냈고, 모두들 잘 해주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촬영이 멈추어지기도 하고 제대로 소통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장면이 발생하지 않는 현실과도 괴리감이 있었지만, 여러 명의 촬영 스타일을 하나로 묶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실제로 어느 만큼이나 가능했는지. 또는 가능할 수 있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선거가 끝나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이제는 기획 아이디어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빨리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을 직감해야 했다. 후회해도 때는 늦었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지. 그러나 미련은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처음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가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된 화면들이 스스로 나를 강제하면 편집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놀아버리니.. 아 ! 이미 촬영된 것들도 내 모습이려니 하는 생각. 60분 분량의 약 170개 정도의 테이프를 보고 정리하고 골라냈다. 1차 OK는 약 5시간, 그것을 다시 3시간, 다시 90분으로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화면에 나온 사람들의 말을 외우고, 선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고 또 보며, 한편으론 정치권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것과 싸우려는 많은 이름없는 사람들, 시민의 힘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제대로 설명 또는 전달할 수 있을까 ? 이미 나는 화면 속에 갇혀버렸고, 객관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너무 많이 빠져 있었다. 이번 편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사운드였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다보니 색은 물론이고 사운드도 심각하였다. 특히 XL-1 카메라는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촬영된 화면에 담긴 사운드는 매우 낮았고, 컴퓨터로 저장하는 가운데 오류가 많았다. 이런 저런 고생을 거치며 하드 디스크에 담기는 했으나, 그 화면들은 대여섯 번 손을 대어야만 했다. 편집 소프트웨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전화로 이 사람 저 사람 괴롭히기도 했다. 편집에서 또 하나 중요한 일은 3차 가편집을 하고 난 뒤 몇 사람에게 시사를 했다. 이런 놓치고 지나간 것이 왜 이리 많은지. 시사를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실에 앉아 지적한 것을 다시 수정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게 이제는 지겹기도 하고, 내 손을 떠나 홀로 존재하는 작품을 보며 새롭기도 하다. 남은 것은 관객들을 만나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번 작업에서 무엇보다 내게 소중히 남겨진 것이 있다. 그것은 나 스스로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아주 익숙한 문장인 헌법 제1조를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 한사람이 정말 중요하구나. 내가 힘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작품을 함께 한, 나의 동료들의 힘이 멋지구나. 함께 작업하는 것이 이런 기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만약 이 작품을 했다면 현재의 모습으로 작품이 나왔을까 하고 자문해 보면,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즐겁고 유쾌하고 진지한 토론과 나눔, 배려는 헌법1조와 함께 언제나 나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지역에서 촬영하신 모든 분들과 제작진의 빈 구석을 채워준 프로듀서 이주영씨, 좋은 연출자인 이안숙, 정신적 여유를 만들어 준 조감독(사실은 총감독 ?), 싫은 소리들어가면서도 끝까지 해준 촬영감독 김재훈, 편집공간을 내준 미동 여러분, 그리고 그리고 나의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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