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 연출의 변(이안숙) :: 2004/06/07 15:19

작업은 끝났다
이안숙
작업이 끝났다. 기쁨도 잠시 연출의 변을 써야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어서 써야지... 작업도 끝났는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쓸까? 아니면 모든 것이 아쉽다고 쓸까? 아니 솔직하게 아직도 작업과 불리 되지 못하고 있는 내 상태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솔직히 아쉽고 낯설다. 2월에 시작한 작업이 9월에 끝이 났으니. 휴가는 꿈도 못 꾸고... 2000년이 시작될 즈음 선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선의 가능성이 희박한 어떤 후보를 통해서 선거와 세상에 대한 순진한 나의 기대를 말하고 싶었다고 나 할까? 그때 마침 낙선운동을 한다는 총선연대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이번 선거는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독립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작업을 하게 되었다. 선거라는 공간이 후보자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틈새에서 연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말이다.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는 어떤 새로운 기운을 느끼기도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나의 순진한 기대이다.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변화란 아주 작은 개인의 움직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것...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 작업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무수한 편견들과 솔직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희석시키는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상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업은 시작됐다. 안국동, 총선연대 사무실을 문턱이 닳도록 왔다갔다하고, 카메라를 들고는 다니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아닌 약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인 우리들을 처음에는 낯설게 대했지만, 그래도 자꾸 보니까 익숙해지는지 헤어질 때쯤에는 무엇을 먹고사는지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선거는 그렇게 4월 13일에 끝났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선거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완성을 하지 못했냐고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것은 당락의 결과가 정해졌을 뿐 작업의 끝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난감함과 부담감으로 편집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보낸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테이프는 내앞에 쌓여있고, 너무 많은 사건들과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가치 있어 보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마음은 자꾸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토론과 서로의 생각들은 설득해 가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편집 구성안 작업을 통해 조금씩 머릿속이 정리되고 화면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편집은 내용적인 부분은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를 기록하는 우리라는 것이었다. 현재에 매달리지 않는 이상 끝은 없을 테니까. 부족해 보여도 아쉬워도 촬영은 끝났고, 그것을 마무리 짓는 일은 작업자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아쉬움에 대한 보답처럼 지역에서 올라온 테이프들은, 사람들의 활기찬 숨소리를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볼 수 없었던 지역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를 향해 힘을 내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그들은 장미꽃을 나누어주고, 거리 한복판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편집작업은 1차, 2차, 3차를 거쳐가면서 조금씩 다큐멘터리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너무 아쉬워 자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하나씩 버려가면서 그리고 모니터 시사를 통해 내가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을 찾아내고, 수정하면서 그렇게 편집작업은 아쉬움 속에 끝이 났다. 화면 속에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서 언제쯤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2000년을 기억할 때 한편의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작업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 함께 작업한 스텝들 모두 함께 만들어간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웠고,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함께 한 분들도 그런 매력을 느꼈던 작업이기를 희망한다. 이제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분들에게도 지루하지 않은 84분이었으면 좋겠고, 나의 순진한 기대가 무뎌지지 않는 앞으로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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