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실린 <전장에서 나는> 리뷰 입니다. :: 2007/10/13 16:11

영화
2007 부산국제영화제(PIFF)
전쟁다큐...사실, 현실 그리고 진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전장에서 나는>
황인규 (per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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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나는>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생선회를 먹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갓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회를 떠 신선하고 쫄깃한 육질의 맛을 즐기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회를 뜬 후 두세 시간 정도 삭혀 육질을 부드럽게 한 다음 깊은 맛을 즐기는 방법이다. 전자는 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후자는 일본 사람들이 애용하는 방식이다,

흔히들 ‘다큐멘터리’ 하면 생생한 현장감과 즉시성을 가진 적나라한 고발이 생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전장에서 나는>은 삭힌 생선회처럼 생생한 현장 대신 일정한 거리와 시차를 두고 차분하게 혹은 에둘러 전쟁을 조명한다. 감독은 긴 호흡으로 우리의 일상에 은폐된 전쟁을 드러내고자 한다.

흔들리는 카메라, 흐트러진 앵글, 구도를 벗어난 피사체 등이 전쟁다큐의 일반적인 이야기 방식이다. 현장의 사실성은 흔들리는 카메라로 확보되고 급박한 편집으로 드라마성(性)을 획득한다. 여기에 참혹한 장면과 처참한 현실을 배경으로 깔아 작품의 긴장감을 높인다. 그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거기에는 어떤 조작이나 개입이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에 따라 수용자는 다큐를 가감 없는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허구에 기반을 둔 드라마 보다 감정의 이입이나 메시지의 공감이 과잉되곤 한다.

과연 그럴까. 다큐에서 찍히는 인물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본래의 자기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을까. 몰래 카메라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무릇 모든 시선은 그 자체로 개입이다. 양자역학에서 얘기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관찰자와 관찰대상 사이는 상호 영향이 없는 객관적 조건에만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하는 순간, 관찰의 시선과 그 대상 사이에는 어떤 소통이 일어나고, 그 소통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다시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쟁다큐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 현상이 왜곡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다큐 역시 드라마처럼 시선의 선택에 의해 사실을 각색하고 특정 필터의 색깔로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도의 위험이 상존하는 전쟁의 현장에선 이와 같은 시선의 왜곡이 오히려 빈번하고 강도가 높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카메라 역시 그 긴박한 현장을 벗어나 나홀로 태연하게 필름을 돌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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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나는>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전장에서 나는>은 전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전쟁의 ’현장’만을 고발하는 다큐가 아니다. 오프닝 자막에서 인용한 도미야마 이치로의 글처럼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전쟁과 한편에선 그 전쟁을 까맣게 잊고 있는 ‘망각과 침묵’을 같이 고발하는 영화이다. 따라서 전쟁의 참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전장의 경험과 기억을 환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감독은 환유보다는 은유의 방식으로 전쟁을 폭로하고 있다. 냉정한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지칭하기 보다는 전쟁의 원인이나 상흔을 지니고 있는 곳을 탐방하고(팔레스타인) 전쟁의 위협이나 공포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진술을 듣고(자이툰부대 출신 병사들의 고백), 전쟁의 요소들을 들추어내고(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부지 갈등 현장),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잠재돼 있는 전쟁공포증을 딛고 불쑥 솟아나 일상의 허구를 비웃는 민방위 훈련을 통해 전쟁은 우리 곁에 상존해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무표정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호등에 나란히 서 있는 도시인들의 따분하고 무감각한 시선은 전쟁이라는 단어와는 동 떨어져 있다. 그러나 곧이어 장면이 바뀌면서 팔레스타인의 어느 도시에서 총소리가 나고 무장한 군인들이 뛰어가는 장면이 뒤따른다. 화면은 다시 바뀌어 군입대을 위해 입소하는 장정들의 행렬이 화면에 비추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화면들은 감독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편집이다. 무표정-총소리-입대행렬은 무감각할 정도로 평온을 가장한 우리 사회도 총소리 한 방에 언제든지 무너져 전쟁의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전언인 셈이다. 그것은 북한의 선제공격일 수도 있고, 미국의 북폭으로 현실화될 수도 있으며 남쪽의 군비확장 결과일 수도 있다.

영화는 이라크와 아프간 등 분쟁지역에 파견한 부대 출신 병사의 회고와 진술을 날줄로, 한편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현장을 카메라가 들여다보는 것으로 씨줄을 삼고 있다. 진술과 현장이라는 날줄과 씨줄이 반복되는 교차 편집을 통해 전장의 상흔과 전쟁의 공포라는 무늬를 새긴 것이다. 감독은 무덤덤하고 메마른 우리의 의식에 이 새로운 무늬의 결을 서서히 각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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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나는>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여기서 공미연 감독의 내공이 돋보인다. 내레이션을 통한 메시지의 직접적 전달을 삼가고 진술과 현장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모습이 아닌 전장의 터를 보여 줌으로서 전쟁의 참혹한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부조리와 전쟁의 공포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을 들추어 보인다. 그것은 단순하고도 즉각적인 고발이 아니라 관객들의 해석과 울림을 유도하는 고난도 장치다.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전쟁과 그곳에 파견된 우리의 젊은이들, 점령군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고통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깊이 새기고 온 우리의 젊은 병사들 그리고 민방위 훈련과 같은 우리 사회의 병영적 요소들. ‘전장에서 나는’은 이러한 전장의 상흔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얘기라는 것을, 전쟁이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잠재되어 있는 현재 진행형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명제에 매몰되어 전쟁의 상흔이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공미연 감독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생활과 전장에 파견된 병사들의 기억을 통해 전쟁이라는 숲이 아닌 전장에서의 ‘나‘라는 나무 하나하나에 생긴 상처를 조명하고 있다.

개개의 나무가 모여 있는 숲은 각각의 나무에 새겨진 기억의 합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전쟁에 대한 공포의 총량은 바로 이들 개인의 전쟁의 기억에 대한 합이라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의 치유가 없는 전쟁의 반대는 또 다른 힘에 의존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실질적으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은 바로 개개인들의 전쟁에 대한 각성과 의지에 달려있다.

지구 저 편에서 펼쳐지고 전쟁은 사실이고 그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거역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공미연 감독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전장의 기억을 가진 젊은이들의 말을 들려주며 우리에게 진실은 어디 있는가를 되묻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전장에서 나는 / Battlefield Calling Korea  2007  88min  DV  COLOR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2007.10.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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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쌈마이 | 2007/10/13 19: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리뷰 좋군~~ 상영후기도 같이 올려줘^^

  • 한문순 | 2007/10/15 00: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감독님, 보람 느끼시겠습니다~. 근데요, 드디어 카메라 후원금 모금이 완료되었는데, pd 150 중고를 사는 것이 나을까요, 소니 a1n hdv를 사는 것이 나을까요...의견 좀 주시라요~

  • 쌈마이 | 2007/10/15 12: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뭘, 어떤 방식(DV HDV)으로 찍을 건가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PD150이야 이미 사용해 보셨으니 넘어가구요, A1N은 HDV로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편집이지요. 후반작업이 별문제가 없다면 A1도 괜찮은 선택이지요. 물론 카메라가 작고, 렌즈가 작다보니 실내나 조명이 없는 곳에서는 취약하지만요. 휴대성과 16:9촬영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지요.

  • 한문순 | 2007/10/15 12: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 개인카메라는 a1이라서 장단점을 경험으로 조금은 알고 있어요. 단체에서 구입하는 것을 이왕이면 다른 것으로 하는 게 좋을지 같은 것으로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가격면으로 보자면 a1이 더 싸요. 물론 시민단체라고 나름 사정을 하고 특별한 방법들을 동원하면 같은 가격으로 PD150 구입도 가능할 것 같거든요. 물론 중고로요..으쩔까나...

  • | 2007/10/15 14: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새로운 기종들이 지금 많이 나오고 있는 단계라서 저 역시 아직 뭘 선택해야 할 지 막막합니다만... A1 가지고 있으니깐, 사무실에서는 150이 더 나을 듯 합니다만...

  • 한문순 | 2007/10/15 21: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무래도 그렇죠?? 낼 영광으로 전화해서 흥정을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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