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머리유니언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 반대 활동 :: 2018/12/05 20:24

올해 여름부터 저희 서울영상집단 멤버들은 "맨머리유니언" 친구들과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를 반대하고 진정한 '자전거 활성화 정책' 마련을 촉구하는 활동을 함께 해왔습니다.


맨머리유니언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no.compulsory.helmets


두 차례 기자회견을 거치는 동안 공미연감독은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청승감독은 도시연대로부터 의뢰받아 기고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그 기고글 공유하니, 읽어보시면 안전을 위하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라고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도시연대 계간지 "걷고 싶은 도시" 2018년 가을호

http://www.dosi.or.kr/%ea%b1%b7%ea%b3%a ··· %25b8%2F


그리고 그 아래에는 저희가 "맨머리유니언" 활동을 하며 만든 웹자보 3종을 공유합니다^^




 <문제는 헬멧이 아니야>


 지난 2월 28일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9월 28일부터 자전거 운전자와 동승자는 언제 어디서든 헬멧을 써야 한다. 동네에서 장을 보거나, 가까운 친구를 만나거나, 인근 공원에 운동을 하러 갈 때도, 시속 1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릴 때도 단지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범법자가 된다. 국가가 헬멧 착용을 법제화하며 국민의 신체를 구속하는 이유는 ‘안전’이다.


 2015년 교통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자전거 총 보유대수는 1,022만대(최근 언론 보도에는 “1,300만 여대”라고 표현되기도 한다.)이고, 전체 가구 중 34.7%가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종주길 건설 전후 5년 동안 64%가 증가한 것이다. 자전거 보유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의 수송분담률은 여전히 2%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정부의 판단처럼, 자전거 타기는 헬멧 착용을 강요받아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 되었을까?


“지난 5년간(2012년~2016년) 자전거 사고로 인한 응급실 내원 환자 중 손상발생부위가 머리인 경우가 38.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여 머리손상 방지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개정된 법률 시행을 예고하며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와 헬멧 착용 유무를 강조했다. 하지만 ‘자전거 사고’라고 명명된 대부분(90.3%)의 사고는 차대차 사고, 즉 자동차와 자전거의 충돌로 인한 ‘자동차 사고’이다. 법규를 누가 먼저 어겼는가 하는 과실 비율을 떠나 물리적 힘의 충돌에서 자전거는 절대적으로 피해자의 위치에, 반대로 자동차는 가해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난 5년간”이라고 표현해서 마치 이러한 사고와 사망자수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2016년 말 기준 자전거 관련 통계를 보면, 2001년 이후 자전거 관련 사고 발생건수와 부상자수는 각각 연평균 6.0%, 6.2% 증가한 반면 사망자수는 연평균 1.0% 감소했다.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사고와 그에 따른 부상도 함께 늘었지만, 도리어 헬멧이 필요할 만큼 위급한 사고들은 15년간 거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응급실 내원 환자 중”이라고 범위를 좁힌 행정안전부의 의도를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극단적인 사망사고를 성급히 일반화하여 전 국민의 신체를 구속하려는 이 통제의 숨은 진의는 무엇일까?


 이 통계를 보면 2016년 말 자전거 사고 사망자수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6%를 차지하는데(참고로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의 비율은 매년 40%에 이른다, 아마도 이를 근거로 보행이 위험하다며 보행자에게 헬멧 착용을 강요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2%대에 머물러 있는 자전거 수송분담률과 함께 고민해 볼 지점이다. 사실 대부분의 자전거 이용자는 헬멧을 쓸 만큼 위험한(차가 다니는)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다. 늘어난 자전거 이용자 대부분은 레저 목적으로 천변 자전거길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천변 자전거길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서 안심하고 탈만한 도로와 시스템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다면, 문제의 핵심은 헬멧이 아니다. 헬멧은 단지 충돌 때 충격을 조금, 말 그대로 조금 덜어줄 뿐이다. 헬멧은 사고 자체를 예방하지 못한다. 안전과 생명을 빌미로 한 규제와 통제는 적용 대상이 상대적 강자, 즉 가해자일 때만 유효할 수 있다. 헬멧 착용 여부에 따라 사고 책임의 유무와 정도를 따지는 기준을 강제로 적용하는 것은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적반하장의 기준은 자전거 이용자가 아닌, 사고 가해자에 해당할 자동차 제조사와 자동차 이용자, 손해보상을 해야 하는 보험사, 교통안전을담당하는 경찰의 책임을 덜고 이익을 제공할 뿐이다.


 사고 예방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려는 고민과 노력 없이 헬멧 착용만 법으로 강요하며 사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세월호 사건 이후 반복해서 지적되고 있는 국가의 안전 불감증을 도리어 반증할 뿐이다. “네가 알아서 조심해!”라는 명령은 “가만히 있으라!”와 얼마나 다를까? 해양경찰이 문제라며 해체해버린 지난 정부의 해법과, 사고가 많으니 헬멧 착용을 강제하자는 지금 정부의 해법은 안일함이 얼마나 다를까? 이 사회가 정말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면 헬멧을 쓰지 않은 사람도 안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안전은 개인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옳은 게 아닐까? 산업화 시대가 한참 지난 지금도 우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나 공사장에서 국가가 내건 표어를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 이 나라는 정말 국민의 안전에 관심이 있는 걸까?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법은 국회 본회의에서 단 한 차례의 토론도 없이 재석 의원 200명 중 기권 4명을 제외한 196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당시 본회의에 상정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는 21개 세부 개정안이 포함돼 있었다. 이를 일일이 살피고 검토한 의원이 몇이나 있었을까?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법을 대표 발의한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도 자전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전기자전거가 자전거로 분류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상정하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뜻밖의 농담처럼 전기자전거와 함께 일반 자전거 이용자에게도 헬멧을 씌우자는 얘기가 나왔다. (국회 심사소위 기록을 보면, 송희경 의원 등은 전기자전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전기자전거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토바이처럼 헬멧을 씌우면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인식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리고 전기자전거도 이제 자전거로 분류되니 형평성을 위해 모든 자전거 이용자에게 헬멧을 씌우자는 논의로 이어졌다. 이후 송희경 의원은 ‘전기자전거 활성화안’과 함께 별도의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 법안을 발의했다.) 본회의를 대신해서 이 발의안을 심사한 심사소위 구성원 중에서도 자전거에 관심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반면에 심사소위에 참여했던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사고를 분석해서 ‘이런 경우는 주의하십시오’ 하면 무시하는데, ‘이번에 법에서 이게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귀를 쫑하고 들으십니다. 그래서 교육 효과 면에서는 입법이 굉장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법의 유용성은 차치하더라도 ‘법적 강제가 곧 교육’이라는 사회 지도층의 위험한 인식은 어떻게든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국가는 국민의 자유를 어디까지 구속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토론이 이토록 없어도 되는 것일까? 이 법이 그토록 유용했다면 행정안전부가 근거로 내세우는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핀란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전거 선진국들에서는 왜 이 법을 채택하지 않고 있을까?


 사람들은 실로 다양한 목적과 방식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대중교통과 연계해 공공자전거를 이용하는 직장인들, 가끔씩 공원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엄연한 자전거 이용자다. 이들에게는 부상을 줄여줄 헬멧보다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동네에서 시속 5~10킬로미터로 자전거를 타며 이웃을 만나고 장바구니를 나르는 노약자나 여성 또한 자전거 이용자다,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헬멧 착용의 불편함이 아닌 느린 속도 그 자체이며, 그들에게 위험요소는 쓰지 않은 헬멧이 아니라 좁은 골목에서도 속도를 높이는 자동차다.


 일괄적인 법 적용은 결국 자전거 이용에 진입장벽으로 기능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전거 이용자에게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고 처벌해 온 호주에서는 자전거 이용자가 약 30% 감소했다는 통계가 있다.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장치는 헬멧이 아닌, 다른 자전거 이용자들의 존재 그 자체이다. 자전거 타고 있는 내 앞과 뒤는 물론 양 옆으로 차가 아닌 자전거가 존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안전장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능동적이며 대중적인 자전거 운동인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임계 질량)의 어원은 <폭주족의 귀환>이라는 한 다큐멘터리 출연자의 발언이었다. 그는 지금의 코펜하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던 1991년의 중국을 다녀와서 이런 말을 전했다.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결정한 건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움직이는 게 어떤지 느껴보고 싶었어요. 자전거 벨을 울리면서 일터에 간다는 건 제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리고 도로 위의 다양한 모습은 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자전거와 보행자들, 수백 개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세 발 자전거, 아이를 태우고 가는 엄마, 형제와 자매를 태운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버스, 택시들이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지나다녀요. 이런 시스템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중국인들 스스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냈기 때문이겠죠. 여기는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규칙이 있어요. 그건 꼭 임계 질량(크리티컬 매스) 같았어요. (조금씩 모여드는) 자전거 이용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가 교차로에서 일시에 좌회전을 하죠. 자전거 이용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임계량을 넘었기 때문에) 교차로에서 동시에 이동하면서 신호등 없이도 자동차를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전거 이용자는 크게 늘었지만 자전거의 수송분담률은 늘지 않았다. 새로운 자전거 이용자 대다수는 좁은 천변길에 몰려들어 속도를 자랑한다. 붐비는 한강변 자전거도로는 어느새 차도보다 더 위험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넓은 도시에서 자전거를 천변으로, 산으로, 교외로 내모는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관리, 통제, 규제해야 할 대상은 자전거가 아니라 도로를 독점하고 있는 자동차다. 자동차가 상징하는 자본주의적 산업 그 자체다. 


 올 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좁은 면적에 건물과 인구가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를 대신할 훌륭한 교통 및 운송수단이 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자전거, 도시>의 한 출연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집에서 직장, 이쪽 주차장에서 저쪽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수단도 결국은 자동차라는 사유지인 거죠. 반면 자전거를 탄다는 건 이쪽 사람에서 저쪽 사람으로 이동해가는 모든 과정이 얼굴을 드러내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인 거죠.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은 결국 관계를 상징합니다.”


 자전거를 탄다는 건 단순한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자동차가 점령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헬멧 착용 여부를 떠나 주행 자체가 외침이고 투쟁이다. 산업화로 기온과 함께 날로 높아지는 속도를 낮추는 일, 무너지고 단절된 관계들을 회복하는 일, 이 모두가 자전거를 타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식 크리티컬 매스인 “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발바리)는 2001년부터 매달 한 차례 광화문과 종로 등 도심을 달리며 ‘도로에서 자전거 탈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발바리는 자동차를 배려하는 자전거 동호인(10여 년 전만 해도 한강 자전거길에는 자전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다 다른 자전거 이용자를 만날 때면 가볍게 목례를 나누곤 했었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서로 배려하던 자전거 문화는 오히려 퇴보했다.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를 적극 지지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전거 동호인들이다. 전동휠, 전기자전거 등 다른 탈 것의 천변공원 진입을 막았던 것도 이들이었다. 퇴보한 문화를 대신하고 있는 건 스포츠 산업과 집단이기주의이다.)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병렬주행을 한다.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두 줄로 나란히 자전거를 탄다. 교통 정체가 심한 도심에서 앞 차가 서면 따라 서고, 달리면 따라 달리며 느릿느릿 이동한다. 발바리의 “떼잔차질”에 가끔 초보자들도 참여하곤 한다. 자전거 타는 게 아직 서툴고 차도를 달리는 건 처음인 이들은 큰 용기와 공포를 함께 갖고서 발바리를 찾아오는데, 정작 라이딩을 마치고선 무척 안락했다며 웃음과 함께 후기를 남기곤 한다. 이 ‘안락함’은 가장 서툰 이의 속도에 맞춰 그의 앞과 뒤,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자전거 무리가 선사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다른 누군가의 안전이 걱정된다면, 그의 옆에서 같은 속도로 함께 달려주면 된다. 즉, 차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도로는 자전거길이 된다. 자전거길이 더 넓어지고 안전해진다. 헬멧을 쓰지 않아도 서로가 안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괜히 헬멧을 쓰라고 인상을 찌푸리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공포를 조장하고 헬멧을 쓰라고 강요하는 일은 도리어 자전거 이용자 수를 줄이고 각자를 차도 위 자동차 무리 속에 고립시켜 위험을 조장할 뿐이다.


 지난 5월, 뒤늦게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 조짐을 알고서 몇몇 자전거 단체와 이용자들이 모여 “맨머리유니언”이라는 이름으로 이 법안의 부당함을 알리고 폐지를 주장해오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자전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헬멧 착용 유무를 떠나, 자전거는 물론 전동휠, 인라인, 스케이트보드, 휠체어, 유모차, 리어카, 보행자, 반려견, 길고양이 등등 모든 이동수단과 운송수단과 뭇 생명들이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으며 ‘길’을 공유하는 세상을 꿈꾸며. Share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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