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 연출자 필모그라피 :: 2004/06/07 15:19

오정훈 1968년생 1994녀 푸른영상 가입 1995년 <약속 하나 있어야겠습니다> 연출 1995년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 조연출 1997년 <세 발 까마귀> 연출 1998년 <세 발 까마귀> 제 3회 부산 국제 영화제 초청 1999년 <세 발 까마귀>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타리 영화제 초청 2000년 <낙선> 공동 연출, 제 5회 부산 국제 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문 출품작 이안숙 1973년 생 1995년 졸업작품 <여자이야기> 연출 1996년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1996년 서울 영상 집단 활동 1997년 <변방에서 중심으로 : 독립영화에 대한 특별한 시선> 조연출 1997년 제 2회 부산 국제 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출품작 1998년 <본명선언> 조연출, 제 3회 부산 국제 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다큐멘타리상 수상 2000년 <낙선> 공동 연출, 제 5회 부산 국제 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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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 - 연출의 변(이안숙) :: 2004/06/07 15:19

작업은 끝났다
이안숙
작업이 끝났다. 기쁨도 잠시 연출의 변을 써야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어서 써야지... 작업도 끝났는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고 쓸까? 아니면 모든 것이 아쉽다고 쓸까? 아니 솔직하게 아직도 작업과 불리 되지 못하고 있는 내 상태에 대해서 말해야 할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솔직히 아쉽고 낯설다. 2월에 시작한 작업이 9월에 끝이 났으니. 휴가는 꿈도 못 꾸고... 2000년이 시작될 즈음 선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선의 가능성이 희박한 어떤 후보를 통해서 선거와 세상에 대한 순진한 나의 기대를 말하고 싶었다고 나 할까? 그때 마침 낙선운동을 한다는 총선연대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이번 선거는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독립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과의 공동작업을 하게 되었다. 선거라는 공간이 후보자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틈새에서 연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말이다.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는 어떤 새로운 기운을 느끼기도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나의 순진한 기대이다.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변화란 아주 작은 개인의 움직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것...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 작업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무수한 편견들과 솔직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희석시키는 자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세상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업은 시작됐다. 안국동, 총선연대 사무실을 문턱이 닳도록 왔다갔다하고, 카메라를 들고는 다니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아닌 약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인 우리들을 처음에는 낯설게 대했지만, 그래도 자꾸 보니까 익숙해지는지 헤어질 때쯤에는 무엇을 먹고사는지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선거는 그렇게 4월 13일에 끝났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선거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완성을 하지 못했냐고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것은 당락의 결과가 정해졌을 뿐 작업의 끝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난감함과 부담감으로 편집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보낸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테이프는 내앞에 쌓여있고, 너무 많은 사건들과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가치 있어 보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마음은 자꾸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토론과 서로의 생각들은 설득해 가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편집 구성안 작업을 통해 조금씩 머릿속이 정리되고 화면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편집은 내용적인 부분은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를 기록하는 우리라는 것이었다. 현재에 매달리지 않는 이상 끝은 없을 테니까. 부족해 보여도 아쉬워도 촬영은 끝났고, 그것을 마무리 짓는 일은 작업자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아쉬움에 대한 보답처럼 지역에서 올라온 테이프들은, 사람들의 활기찬 숨소리를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볼 수 없었던 지역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를 향해 힘을 내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그들은 장미꽃을 나누어주고, 거리 한복판에서 구호를 외치면서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편집작업은 1차, 2차, 3차를 거쳐가면서 조금씩 다큐멘터리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너무 아쉬워 자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하나씩 버려가면서 그리고 모니터 시사를 통해 내가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을 찾아내고, 수정하면서 그렇게 편집작업은 아쉬움 속에 끝이 났다. 화면 속에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느껴져서 언제쯤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2000년을 기억할 때 한편의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작업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 함께 작업한 스텝들 모두 함께 만들어간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웠고,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함께 한 분들도 그런 매력을 느꼈던 작업이기를 희망한다. 이제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분들에게도 지루하지 않은 84분이었으면 좋겠고, 나의 순진한 기대가 무뎌지지 않는 앞으로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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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 - 연출의 변(오정훈) :: 2004/06/07 15:19

아 !
오정훈
2000년 선거가 끝났지 오래다. 그리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것도 모두 마쳤다. 약 6개월 반 동안 내내, 나는 총선시민연대 활동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아직도 귓가에는 ‘바꿔 ! 바꿔 ! ’ 소리가 빙빙 돌고 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대해서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늘상 있는 선거이고, 선거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그리 많은 변화는 없다. (세상이 언제는 금새 변했는가 !) 더군다나 그동안 워낙 나의 가슴을 차갑게 만든 후보자들, 그리고 당선된 후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 도대체 국회의원은 왜 되려고 하는가 ? 온갖 비리와 당쟁으로 서로의 주장을 한치의 양보없이 야욕과 날치기, 무능한 정치운영의 반복만을 보여준 그들에게 또는 그러한 자리에 무슨 호감이 생길 수 있겠는가. 쓴 웃음 한번 지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밖에.... 그러나, 총선시민연대 사무실에 촬영을 가면서 나의 신파조가 작동했는지, 왠지 무언가 발언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이들을 선거에서 떨어뜨리자는 낙선운동은 전국적 힘으로, 국민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점점 내 안의 냉소가 조금씩 따뜻한 기운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권회복, 참여민주주의라는 커다란 불씨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촬영과정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이 운동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한 순간 한 순간 어렵고 힘든 지점들을 만나며 토론하고 기획하고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카메라를 들면 그 결과물의 활용과는 상관없이, 당시에는 주변인 혹은 관찰자로 인식되어지는 것만 같았다. 왠지 시민연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든 나를 이상한 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역사의 한 순간, 사회적 힘이 부딪히는 그 순간에 있다는 것이 사뭇 나를 긴장시켰고, 단련시켰다. 흐르는 움직이는 역사 속에 카메라로 그 현장을 담는다는 것은 진정 흥분되는 일이다. 촬영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애초에 기획된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이 발전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빨리 진행되는 긴박한 상황 속에 계획은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낙선운동이 갖는 정치적 한계, 시민운동의 자기 지향성 혹은 목표점, 지역간 갈등, 운동을 이끌고가는 사람들간의 갈등, 이 모든 것은 한낱 머리 속 생각에 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할 뿐이었다. 구성방향에 맞게 촬영을 하고 있는지가 계속 의심이 되었다. 하루 하루 시간은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고 촬영 테이프는 늘어나지만 과연 이 속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이 작업을 함께 한 제작팀에서의 깊이 있고 다양한 토론이었다. 공동작업의 어려움을 익히 들었던 터라 서로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사실 있었으나, 우리는 잘 맞았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하기도 하고, 나의 썰렁한 농담에 웃어줄 주 아는 여유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는 모두 나처럼 웃기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여튼 낙선운동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면서 주제를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움직이는 현실은 기록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주제와 더불어 상황에 대한 참여를 함께 요구하며 선거 개표일을 앞당기는 듯 했다. 이번 작업의 특징은 여러 대의 카메라, 촬영자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다. 부산, 대구, 원주, 광주, 대전, 서울( 이곳에서는 동시에 3대의 카메라가 움직이기도 했다.) 등 각 촬영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전에 같이 일 했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각 시민단체가 낙선운동에 동의하며 빠르고 급하게 조직된 것처럼 우리의 제작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간 활동해 온 독립영화의 성과이면서 지역 영상문화 혹은 운동의 성장 상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각 지역 촬영자들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작품이 나올 수 있을 지 의심이 간다. 메일을 간간히 주고 받으며 연출의도와 인터뷰 목록을 보냈고, 모두들 잘 해주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촬영이 멈추어지기도 하고 제대로 소통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장면이 발생하지 않는 현실과도 괴리감이 있었지만, 여러 명의 촬영 스타일을 하나로 묶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실제로 어느 만큼이나 가능했는지. 또는 가능할 수 있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선거가 끝나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이제는 기획 아이디어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빨리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을 직감해야 했다. 후회해도 때는 늦었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지. 그러나 미련은 남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처음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가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된 화면들이 스스로 나를 강제하면 편집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놀아버리니.. 아 ! 이미 촬영된 것들도 내 모습이려니 하는 생각. 60분 분량의 약 170개 정도의 테이프를 보고 정리하고 골라냈다. 1차 OK는 약 5시간, 그것을 다시 3시간, 다시 90분으로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화면에 나온 사람들의 말을 외우고, 선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고 또 보며, 한편으론 정치권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것과 싸우려는 많은 이름없는 사람들, 시민의 힘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제대로 설명 또는 전달할 수 있을까 ? 이미 나는 화면 속에 갇혀버렸고, 객관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너무 많이 빠져 있었다. 이번 편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사운드였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다보니 색은 물론이고 사운드도 심각하였다. 특히 XL-1 카메라는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촬영된 화면에 담긴 사운드는 매우 낮았고, 컴퓨터로 저장하는 가운데 오류가 많았다. 이런 저런 고생을 거치며 하드 디스크에 담기는 했으나, 그 화면들은 대여섯 번 손을 대어야만 했다. 편집 소프트웨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전화로 이 사람 저 사람 괴롭히기도 했다. 편집에서 또 하나 중요한 일은 3차 가편집을 하고 난 뒤 몇 사람에게 시사를 했다. 이런 놓치고 지나간 것이 왜 이리 많은지. 시사를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실에 앉아 지적한 것을 다시 수정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게 이제는 지겹기도 하고, 내 손을 떠나 홀로 존재하는 작품을 보며 새롭기도 하다. 남은 것은 관객들을 만나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번 작업에서 무엇보다 내게 소중히 남겨진 것이 있다. 그것은 나 스스로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아주 익숙한 문장인 헌법 제1조를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 한사람이 정말 중요하구나. 내가 힘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작품을 함께 한, 나의 동료들의 힘이 멋지구나. 함께 작업하는 것이 이런 기쁨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만약 이 작품을 했다면 현재의 모습으로 작품이 나왔을까 하고 자문해 보면,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즐겁고 유쾌하고 진지한 토론과 나눔, 배려는 헌법1조와 함께 언제나 나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지역에서 촬영하신 모든 분들과 제작진의 빈 구석을 채워준 프로듀서 이주영씨, 좋은 연출자인 이안숙, 정신적 여유를 만들어 준 조감독(사실은 총감독 ?), 싫은 소리들어가면서도 끝까지 해준 촬영감독 김재훈, 편집공간을 내준 미동 여러분, 그리고 그리고 나의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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