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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분들에게 전하는 서울영상집단 근황 :: 2022/07/04 17:31

안녕하세요, 서울영상집단 공미연 김청승입니다.

소식 전합니다.

1. 서울영상집단은 최근 서울을 벗어나서(탈출해서) 지방도시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2. 이익집단화 된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에서 탈퇴 했습니다.
3. 여러분으로부터 도움 받아오던 후원회원제도를 중단 했습니다.

네, 어쩌면 이 메일이 후워회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서울을 탈출한 가장 큰 이유는 가난한 저희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서울의 집세가 크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인구 천만, 수도권을 더하면 전 국민의 절반 가량이 밀집해 있는 숨막히는 이 도시가 그래도 정다운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양각색 다양한 양태의 집들에서 거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삐까번쩍한 높은 건물이 내 방의 하늘을 가리고 그늘을 드리운다 해도, 낡고 낮고 좁은 방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집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들이 속도를 높이는 넓고 무서운 도로 뒤편으로는 가난한 이들의 집들을 얽기설기 엮고 있는 골목들이 남아있었고, 그 좁은 길들이 만들어내는 정다운 정취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70년대 아파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래로 서울의 개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88올림픽을 위한 상계동 철거부터 쫓겨난 가난한 이들이 불에 타죽은 2009년 용산참사로 이어지는 그 폭력적인 개발은 지금껏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골목길로 엮인 많은 동네들이 사라지고 아파트단지가 그 동네를 대신하는 동안 집세는 꾸준히 올랐으며, 저희처럼 가난한 이들, 청년과 노인들,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서울의 주변부로 이동해 왔습니다. 서울 안에서 좀 더 가난한 동네로의 이동이 이제는 그 막다른 길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저희 주변의 많은 이들이 먼저 서울을 떠났고, 저희 또한 서울을 떠나게 되었으며, 그래도 서울에 남은 이들은 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버티고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노동과 임금 대신 많은 이들이 투기에 기댄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땅과 집, 그 어느 누구에게 특정해 주어지지 않은 자연의 가치들이 많은 이들의 불안과 욕망 속에 누군가의 소유로 합법한 능력의 대가로 거래되어지고 있죠. 그림과 음악 등, 저작권이라는 특정할 수 없는 가치 또한 투기의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영화 혹은 독립영화라고 해서 다르지도 않습니다. 상업영화의 경우 천 만, 독립영화의 경우 십 만, (독립)영화의 가치 또한 화폐와 수치로 전환되어버렸습니다. 새삼스런 이야기도 아닐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죄송하지만, 저희는 지금 일종의 절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노력과 희망, 이상과 신념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 노력과 희망, 이상과 신념과는 반대의 방향으로만 흘러갑니다.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만 가고,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기에 저희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치고 느려져만 갑니다.

이건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느냐 민주당이 정권을 잡느냐 혹은 정의당이 정권을 잡아내느냐와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특정 정당이 절대악이고 다른 특정 정당이 그에 맞서는 선이자 진보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진실을 놓치고 맙니다. 그 선거놀음은 되려 '나'의 삶과 연관된 수많은 작지만 소중한 정치적 의제들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마이크를 쥐고 말을 외치는 패거리들은 사람을 현혹하고 헛된 희망을 심고 그것을 담보로 관계를 뒤틀고 옭아매고 맙니다. 이건 그가 어느 정당의 소속이냐 어떤 성격의 단체 소속이냐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결국, 참된 이상이란 개개인의 행복과 자유, '나'의 행복과 자유에 근거합니다.

관계들은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당신은 정의롭다고, 당신은 자유롭다고, 당신은 행복하다고, 우리가 타인의 정의와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정의롭고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내게 환상과 착각을 강요하곤 합니다.

나의 이상과 신념은 그 이상과 신념을 외치는 패거리들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상과 신념을 외치는 패거리와 함께 하고 그들을 지지함은 내 이상과 신념을 지키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영웅을 만들어내고 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위탁하곤 합니다. 무언가 외치는 패거리를 지지하는 것만으로 나의 삶을 이상과 신념을 지키는 정의로운 삶으로 확신하곤 합니다. 그 맹신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진실을 가리고 환상과 착각으로 우리를 내몰곤 합니다. 영웅과 패거리에 모든 선택과 판단을 전가한 삶, 그 인생이란 따지고보면 참 쉽고 안전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내게 주는 건 행복도 자유도 아닌, 영웅과 패거리를 따르면 이상과 신념이 실현될 거라는 희망, 환상과 착각 뿐인데도 말입니다.

가난한 저희가 그래도 이십여 년을 이 복잡하고 거대한 도시에서 지낼 수 있었던 건, 그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나마 서울을 떠남은,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건, 깨져버린 희망 때문이며, 더 이상 그 희망을 품을 수 없다는 절망 때문이며, 멋대로 다가와서 알랑거리며 얼쩡이던 이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품을 자격을 묻고 멋대로 관계를 거두어간 그 '말을 외치는 패거리'들 때문입니다.

어쩌면 후원회원 여러분에게 저희 또한 그런 존재들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저희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는 사람들, 더 이상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소식도 전하지 않는 사람들, 당연하다는 듯이 꼬박꼬박 돈만 걷어가는 나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저희(공미연과 김청승)에 대해 좋지 않은 말들을 전해들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선배를 음해 했다던지, 독립영화 진보운동을 욕보였다던지, 말이 거칠고 폭력적이라던지 하는 말들 말입니다. 애써 무시하려 했던 말들 속에서 저희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이든 글이든 영화든 어떤 표현이든 무의미하구나라는 절망과 무기력에 휩싸여 있습니다. 앞일, 언제쯤 영화를 만들고 어떻게 활동을 하고 어떤 메세지를 전할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미안한 마음으로, 여러분과의 그 어떤 논의과정도 거치지 않고, 열심히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 어떤 각오와 노력의 과정도 없이, 후원을 받지 않겠다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음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에 위탁해 운영해오던 저희 서울영상집단의 후원회원 모금 시스템을 중단함과 동시에 저희 또한 한독협에서 탈퇴했음 또한 알려드립니다. 한독협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온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저희는 협회와 진영 내에서 이뤄지는 부덕한 일들에 대해 오래도록 문제 제기하고 반론을 펼쳐 왔으나,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문제제기와 질문으로부터 합당한 답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침묵 뒤에 돌아오는 건 저희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 뿐이었으며, 그로 인해 대다수의 (눈치 보는) 동료 영화인들 또한 저희와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독협 회원을 이어온 건, 협회가 협회원들 대상으로 전하는 활동 정보를 감시하기 위함이었으며, 한독협의 시스템에 기대어 여러분이 저희에게 전하는 후원금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감시하기에 저희는 지쳤고, 누군가로부터 응원을 받기에 저희는 너무 게을러졌습니다.

후원과 지원이란 금전적 응원은 독이 든 축배와도 같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서는 몸의 근육을 풀어헤치고 정신을 해이하게 만들곤 합니다. 더욱이 독립해 싸우고자 하는 이들을 무디게 하는데 이처럼 효과적인 당근도 없을 겁니다. 그간 교활한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돈과 자리로 독립하고자 하는 이들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을 회유해왔습니다.

문체부와 영진위 시청 구청 등 공적기금을 나누는 곳에는 '눈먼 돈'을 먹기 위해 모인 잡배들이 모여들어 늘 소란스럽습니다. 국회 뺨치는 정치판이 만들어져 서로 간에 편을 먹고 나누며 자리를 나누고 돈을 나눕니다. 한독협과 협회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독립영화인들도 이 아사리판에 야합해 돈을 나누고 자리를 나누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한독협은 받아온 돈과 자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독립영화인들에게 나누며 편을 만들고 비판자들을 견제합니다. 창작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의 의미를 토론하고 영화의 존재 의의를 놓고 열을 올리던 독립영화씬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돈과 자리를 나누고 순위를 매기는 이들(독립영화배급사 대표, 독립영화관 극장 대표, 영화제 프로그래머, 평론가, 독립영화정책 및 미디어교육 활동가 등)이 씬의 모든 논의를 독점해버렸습니다. 돈과 자리와 평가에 연연하는 창작자들은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에 그저 열심일 뿐이어서 이 판에 뜨겁고 시린 말들이란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저 상과 돈을 주고 받는 이들 간의 미지근한 상호아부와 자화자찬들만이 남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독립영화'란 단어를 독점하고 정의의 탈을 쓴 채 여전히 피해자 코스프레에 열을 올리며 이런 저런 지원금을 받아가고 서로 자리를 나누고 있을 뿐이죠. 저희처럼 그런 그들을 비판하면 독립영화와 운동을 욕보이는 쓰레기로 낙인 찍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의 취급을 당할 뿐입니다. 저희가 관계를 맺은 지역 시민사회(서울 은평) 및 운동 진영 이곳 저곳에서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골 텃세가 무섭다고요? 서울만 한 곳이 있을까요?)

하소연을 할 곳도 딱히 없습니다. 찍힌 이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도 없으니까요. 인간사의 그렇고 그런 관계들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지 않아? 호들갑 그만 떨어!라고 누군가 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사 다 그렇고 그렇죠. 그렇고 그런 인간사에 대항하는 사람들, 진보사회와 독립영화 또한 그렇고 그렇네라는 이 결론을 아직도 저희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세상의 끝에서 기대했던 마지막 보루가 쓰러지는 걸 지켜보는 절망을 느낍니다. 하소연 할 곳도 딱히 남지 않았습니다. 죄송하게도 저희를 애정해주셨던 여러분에게 구질구질한 하소연을 마지막 편지로 남깁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 마지막 편지가 서울영상집단의 끝을 알리는 건 아닙니다.

저희 서울영상집단의 모체인 서울영화집단의 시작부터 따지자면 40여 년,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시기만 따지자면 30여 년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온 이 단체의 이름이 가지는 권위가 존재합니다. 저희는 이 이름을 지켜갈 겁니다. 이 이름이 주는 영광과 권위가 아니라, 그 영광과 권위를 탐내는 이들로부터 이 이름을 지키며 이 이름이 그동안 범해온 실수와 잘못들을 짊어져 갈 겁니다. '서울영상집단이 부덕했음을 시인함'을 남은 서울영상집단 멤버들의 마지막 사명으로 여깁니다.

독립영화를 기록한 최초(?)이자 유일(?)한 영상물로 여겨지는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1997년 저희 서울영상집단이 제작한 독립다큐멘터리입니다. 이는 다음해 한국독립영화협회 발족을 축하하는 영상물이기도 했습니다. 변방은 변방 자체로 그 가치를 지니며 그 가치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말 또한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어느새 독립영화인들은 변방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주류시장의 상품과 같은 대접을 받고 그와 같은 권위를 가지기를 욕망하고 있습니다. 비주류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비주류의 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닙니다. 그걸 마치 부끄러운 일처럼 여기며 상을 받아야 하고 개봉을 해야 하고 주류의 수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욕망을 부추기는 말들 속에 모두들 휩싸여 있습니다. 독립영화도 진보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욕망들이 향하는 곳, 그 욕망들로 가득찬 곳이 결국 서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서울에서 저희는 탈출했습니다. 별다른 준비도 하지 못한 충동의 결과입니다.

어두운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매트릭스에서 깨어난 네오처럼, 저희는 오랜만에 막막한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 정착한 이곳이라고 해서 순백의 무릉도원인 것은 아닙니다. 이곳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일부이니까요. 똑같이 자동차가 길을 위협하며 질주하고 위압적인 사원처럼 곳곳의 아파트들이 골목을 내려다보는 똑같은 욕망에 휩싸인 인간들이 정해진 일과를 오가며 웃고 울고 떠들고 다투고 외치는 말들이 관계를 옭아매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무서운 인간의 세상입니다.

다만 이 곳에 막 당도한 외지인인 저희에게는 그 어떤 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을 뿐입니다. 서울을 떠나오기 전 이미 관계들이 모두 깨져버렸던 두세 해 동안의 저희 일상과 낯선 곳에서의 오늘은 크게 다를 일이 없습니다. 다만 낯선 곳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과 혼란으로 인해 저희는 작은 바람에도 몸을 떨고 색 하나에도 민감하게 고개를 돌리며 아이처럼 오감을 활짝 열고 세상을 새로 맞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가 옮겨온 곳은 지방의 공업도시입니다. 큰 공장이 위치한 곳임에도 미세먼지가 끼는 날이 좀처럼 없습니다. 서울보다 남쪽 지역임에도 서울처럼 뜨겁지도 않습니다. 같은 돈으로 훨씬 더 쾌적하고 넓은 집다운 집들에 세를 들었습니다. (반지하방이 서울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서울사람들은 알지 못할 겁니다.) 서울에 비하자면 깨끗한 공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인적 드문 조용한 산책길 또한 이곳에 존재합니다.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가 가까운 길입니다. 이 낯선 도시의 낯선 산책길이 요즘 저희들의 유일한 기쁨이며 큰 자랑거리입니다.

혹 이 낯선 곳을 여러분이 지나게 된다면 꼭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처럼 얻게 된 집다운 셋방에 여러분 모시고 손수 지은 밥 한끼 꼭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여유가 있다면 함께 저희가 자랑하는 산책길을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가난한 저희가 그래도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건 여러분 덕분이었다고 고마운 말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약속할 수 없는 어느 날, 문득 저희가 떠들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면 다시 편지 전하겠습니다.

- 2022년 7월 4일, 서울영상집단 공미연 김청승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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